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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모두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과 어울려 살기는 어렵기 마련이다. 심지어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같은 공간 자체에 있기 싫어도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고 나 스스로도 겪고 있다. 갈등은 참으로 고통스럽지만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한 점에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 왕을 읽으며 인물 간의 갈등과 해소에 대해 주목했다. 비극이란 말답게 갈등과 해소 모두 죽음과 같은 극단적인 장치를 통해 일어나고 마무리 된다. 비록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갈등과 해소의 과정이 리어 왕과 그의 주변 인물에 초점이 있긴 하지만 작품 속 등장하는 모든 갈등의 양태에 관심을 갖고 작품을 읽어 나갔다.
작품이 꼭 봉합된 갈등만을 그리고 있지는 않았다. 인물 간의 갈등이 해소되지 못한 채 끝나는 경우도 있다. 리어 왕의 두 딸 고네릴과 리건의 갈등, 에드먼드와 그의 아버지 글로스터와의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에드먼드를 자신의 남자로 맞이하기 위해 다투다 서로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후자의 경우는 아들 에드먼드의 밀고로 아버지 글로스터는 두 눈을 잃는 고통을 겪게 된다. 에드먼드가 죽기 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함으로써 갈등의 해소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아버지 글로스터와는 밀고 이후 서로 접촉한 적이 아예 없으므로 갈등이 해소됐다고 하긴 어렵다고 보인다.
봉합된 갈등의 경우 결과적으로 갈등이 해결되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그 양상이 상이한 경우가 많았다. 켄트와 리어 왕의 갈등의 경우 그 양상이 쌍방형이라기보다는 일방형에 가깝다. 다시 말해서, 리어 왕이 켄트를 일방적으로 내침으로써 형성된 갈등이다. 갈등형성의 원인도 켄트의 지나친 충정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라 리어 왕의 망령 때문일 것이다. 특이한 점은 갈등의 원인은 리어 왕이지만 해소에 있어서는 켄트가 담당했다는 점이다. 리어 왕에 의해 쫓겨난 후에도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면서까지 그를 도우려 했고 결국엔 도왔기 때문이다. 도버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글로스터의 몫이라 할 수 있지만, 이후에 막내딸 코딜리아와의 화해라는 가장 중요한 양상을 만들어 준 사람은 바로 켄트였기 때문이다.
글로스터와 에드거와의 갈등 역시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방형의 양상을 띠고 있다. 글로스터의 서자 에드먼드의 야욕에 그만 글로스터가 속아 넘어가면서 에드거는 본의 아니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나아가 누더기 하나만 걸친 정신병자 거지 톰으로 살아간다. 갈등의 해소과정도 비슷하다. 두 눈이 뽑힌 아버지를 보고 에드거는 아버지를 위해 자살 아닌 자살을 방조해줌으로써 아버지 글로스터의 목숨을 지켜주었다. 켄트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내쫓은 사람을 오히려 도와준 것이다. 글로스터 역시 이 모든 것이 에드먼드로 인해 발생한 오해라는 것을 알고 에드거와 진실된 화해를 통해 갈등이 봉합된다. 모르던 사람에게 검에 찔려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 검을 찌른 사람이 자신의 형이라는 사실, 자신의 아버지가 겪었던 고초 이런 것들을 죽음의 순간에서야 비로소 후회하고 갈등이 해소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리어 왕과 코딜리아의 갈등은 가장 작품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리어 왕이 코딜리아의 효심을 이해했더라면, 작품 속에 나오는 갈등은 모두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딜리아는 비록 쫓겨났지만 아버지 리어 왕을 걱정하는 마음 더 나아가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프지만 전쟁을 감행하여 아버지를 구하려 한다. 코딜리아를 내쫓을 당시만 해도 리어 왕은 망령이 난 늙은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갈등이 봉합되는 순간 리어 왕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의연함을 보여줬다. 에드먼드가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리어 왕과 코딜리아를 모두 압송되면서 자신의 처지를 충분히 낙심할 수도 있었는데도 말이다. 리어 왕은 더 이상 고집스럽고 교만하지 않으며 세속적 가치에 의존하지 않는다. 자신의 심복의 서자한테 포로가 된 가장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으면서도 작품 속에서 가장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인간의 삶 자체는 갈등과 해소의 연속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인도에 혼자 산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인간들은 다른 사람과 부대끼고 싶지 않더라고 부대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또한 전 세계 60억 인구 모두 개개인마다 성격이나 가치관 등이 모두 다르다. 비슷할 수는 있어도 똑같을 순 없는 것이다. 사람들과 서로 부대껴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운명이라면 마찬가지로 부대끼면서 발생하는 갈등 또한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갈등을 봉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리어 왕을 포함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결국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갈등과 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화해의 가치를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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